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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200번째 기고

본인이 가진 지식이나 능력을 활용해 필요한 것을 얻어가는 것이 삶의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삶에 필요한 정신적, 물질적 요소들을 얻기 위해 본인의 역량을 최대한 쏟아 붓는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각자의 가치관이 작용하게 된다.     필요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찾아내거나 새로 만들어야 하고, 있어도 불편하거나 온전치 못하면 고치거나 채워서 완결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 모든 과제는 각 개인이 해결해야 할 것이지만, 또한 사회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공동의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사회 공동체에서 개인의 삶은 다른 사람과도 연관을 맺고 있다. 따라서 구성원 모두 이해와 화합으로 최선의 방향을 찾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표현 방식의 대표적인 것이 말과 글이기는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나는 그중에서 글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내 생각을 짧은 글로 정리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중앙일보 오피니언면의 ‘독자 마당’ 코너에  글을 보내기 시작했고 올해로 벌써 12년째가 됐다. 그리고 이 글은 내가 200번째 보내는 것이다. 내 나름의 노력으로 쌓인 횟수다. 주변의 격려에 힘을 얻어, 틈틈이 써 온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매번 “이 글이 신문에 게재될만한 것인가”하는 조바심이 들었고 그런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세상의 모든 일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나의 글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사회 공동체 사회 구성원 중앙일보 오피니언면

2024-04-23

[독자 마당] 인생은 선택의 연속

새해를 맞을 때마다 몇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반드시 운동하겠다, 담배는 꼭 끊겠다 등이다. 하지만 작심 삼일로 끝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인생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엇갈린다. 꼭 해야 할 일,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선택에 달려있다.     봄에는 씨를 파종해야 한다. 씨를 뿌리지 않고는 결실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가을의 결실은 달라진다. 정확한 방향 설정이 없다면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아도 결국 제자리걸음이다.   연초가 되면 부모들의 걱정 중 하나가 자녀의 결혼 문제다. 주변에 결혼 적령기를 넘긴 자녀 때문에 고심하는 부모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한  항변도 있다.   첫째는 경제적인 문제다. 직장도 변변치 않아 부모에게 얹혀살며 방 한 칸 얻을 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둘째는 독신주의자 아닌 독신들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없지만 오랜 독신 생활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결혼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도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만족과 편리, 안일함에만 도취하여 있다면 사회나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스갯소리지만 인구 문제와 관련해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섬이 3개가 있는데 한 섬에는 남자만 100명이 살고, 한 섬에는 여자만 100명이 살았다. 그리고 또 한 섬에는 달랑 남녀 한 쌍만 살았다. 100년 후 남녀 각각 100명이 살았던 두 섬엔 유골만 가득했지만, 남녀 두 명이 살았던 섬엔 사람들도 사람으로 북적였다고 한다.   어느 것이 잘한 선택인가?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인생 선택 결혼 적령기 사회 구성원 인구 문제

2023-01-08

[기고] 작용과 반작용

뉴턴의 운동법칙(Newton’s laws of motion) 중 하나에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모든 작용에 대하여 항상 방향이 반대이고, 크기가 같은 반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이지요. 모든 물체가 잡아당기는 작용을 가하면 되돌아가려는 반작용이 생겨난다는, 고전역학이 바탕을 이룬 물리학적 이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자연의 운동법칙일 뿐 아니라 정치나 일반사회에서도 적용이 되는 법칙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식사대접을 하면 나도 그에게 차라도 대접 하고 싶고,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 상대방을 똑같이 칭찬하게 되며, 욕을 먹으면 똑같이 욕을 하거나 불평을 하게 됩니다. 이 순리가 작동되지 않으면 결국 갈등이 쌓이고, 쌓이면 둑이 터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지금은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일도 막을 수 있을까’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둑이 터지는 것만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또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을 뿐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 상호간의 믿음조차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면 상대방도 믿고 내가 믿지 않으면 상대방도 믿지 않습니다. 또 내가 의심하면 상대방도 의심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서로 믿지 못하는 의심 때문에 계약서라는 것도 생겼습니다. 계약할 때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게 되고, 그래서 계약은 가진 자, 즉 힘센 자에게 유리하게 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늘 사회 전반에서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갑과 을 간의 갈등은 이래서 생겨나는 것이지요.     성경 마태복음(마 7:12)에 ‘모든 일에 네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대접, 즉 작용이 있으면 그만한 대접, 그 반작용이 되돌아온다는 것이고 내가 남을 대우하는 만큼 남들도 나를 대우한다는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복잡한 인간관계는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연의 운동은 똑같은 질량의 운동량이 되돌아오지만 사회관계에서도 경우는 틀릴 수 있어도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의 갚음이 분명히 있습니다. 누구든 주어진 현안의 해결을 위해서는 냉철한 이성과 치밀한 사고가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나날이 짜증만 더합니다.  특히 정치하는 인간들은 그저 ‘치고받는’악순환만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합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과 제도’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우선 내 가정, 내 가족부터라는 개인적인 각성과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즉, 관심과 배려가 정(正)이라면 감사와 보답은 반(反)이고 합(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 사회는 모든 이에게 충분히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나라도 보수와 진보가 서로 상생하는 정반합의 방향으로 제대로 발전될 것입니다. 이는 상식이지만 사람들은 늘 잊고 삽니다. 손용상 / 소설가기고 반작용 작용 작용 반작용 사회 구성원 우리 사회

2022-09-07

[기고] 작용과 반작용

뉴턴의 운동법칙(Newton’s laws of motion) 중 하나에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모든 작용에 대하여 항상 방향이 반대이고, 크기가 같은 반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이지요. 모든 물체가 잡아당기는 작용을 가하면 되돌아가려는 반작용이 생겨난다는, 고전역학이 바탕을 이룬 물리학적 이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자연의 운동법칙일 뿐 아니라 정치나 일반사회에서도 적용이 되는 법칙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식사대접을 하면 나도 그에게 차라도 대접 하고 싶고,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 상대방을 똑같이 칭찬하게 되며, 욕을 먹으면 똑같이 욕을 하거나 불평을 하게 됩니다. 이 순리가 작동되지 않으면 결국 갈등이 쌓이고, 쌓이면 둑이 터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지금은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일도 막을 수 있을까’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둑이 터지는 것만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또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을 뿐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 상호간의 믿음조차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면 상대방도 믿고 내가 믿지 않으면 상대방도 믿지 않습니다. 또 내가 의심하면 상대방도 의심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서로 믿지 못하는 의심 때문에 계약서라는 것도 생겼습니다. 계약할 때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게 되고, 그래서 계약은 가진 자, 즉 힘센 자에게 유리하게 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늘 사회 전반에서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갑과 을 간의 갈등은 이래서 생겨나는 것이지요.     성경 마태복음(마 7:12)에 ‘모든 일에 네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대접, 즉 작용이 있으면 그만한 대접, 그 반작용이 되돌아온다는 것이고 내가 남을 대우하는 만큼 남들도 나를 대우한다는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복잡한 인간관계는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연의 운동은 똑같은 질량의 운동량이 되돌아오지만 사회관계에서도 경우는 틀릴 수 있어도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의 갚음이 분명히 있습니다. 누구든 주어진 현안의 해결을 위해서는 냉철한 이성과 치밀한 사고가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나날이 짜증만 더합니다.  특히 정치하는 인간들은 그저 ‘치고받는’악순환만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합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과 제도’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우선 내 가정, 내 가족부터라는 개인적인 각성과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즉, 관심과 배려가 정(正)이라면 감사와 보답은 반(反)이고 합(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 사회는 모든 이에게 충분히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나라도 보수와 진보가 서로 상생하는 정반합의 방향으로 제대로 발전될 것입니다. 이는 상식이지만 사람들은 늘 잊고 삽니다.   곧 추석이 다가옵니다  모두가 이웃들에게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좋은 생각, 좋은 마음을 베풀기를 희망합니다. ‘베풀면’ 반드시 ‘되돌아’옵니다. 전화위복은 마음먹기에 달렸고 칭찬과 배려, 그리고 그렇게 각자가 스스로 돕는 마음을 지니면 반드시 하늘이 도와줍니다. ‘작용’과 ‘반작용’은 꼭 물리학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용상 /소설가기고 반작용 작용 작용 반작용 사회 구성원 우리 사회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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